김홍신의 이력사항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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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3-10-10 10:19
교수님, 선생님, 의원님 변화와 깨움이라는 시간을 부탁드립니다.
 글쓴이 : 신안철 (175.♡.170.3)
조회 : 2,538  
   http://ebook.ebooki.kr/EBOOKS/9/main.html [5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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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십니까
저는 건국대학교 99학번의 신안철입니다. 물론 현재는 학생신분은 아닙니다. 현재 주식회사 실티라는 직원 24명의 중소기업에 근무하고 있습니다. 호칭을 무엇으로 규정하기 어려워 저에게 있어서 제자였기에, 교수님으로 호칭하겠습니다. 제가 이렇게 교수님께 글을 올리게 된 것은 다름이 아니라, 그 동안의 저의 고충과 여러 벤처정신에 대한 직원들의 열의를 일으키고자 하는 마음에서 이렇게 글을 쓰게 되었습니다.
 
현재 제가 다니는 회사는 아버지가 43년간 몸담아 근무하던 축산기자재 회사 입니다. 아시다시피 농민이 힘들 때 농민을 상대로 하는 업체들은 더 힘들어지기 마련인데, 현재의 상황이 그렇다고 할 수 있습니다. 제가 입사한 것은 2008 3월이고, 삼성전자의 연구원으로 근무하다. 기업의 미래를 꿈꾸며 쉽지 않지만, 저의 길을 찾고자 이렇게 인생의 큰 진로를 결정하게 되었습니다. 아마 평생의 대학생들의 고민이 멋진 회사에 취직하고자 함에 있다는 것은 우리 현실이 된지 오래되었지만, 제가 꿈꾸는 희망적인 그림을 우리 직원들과 함께 공유하고자 하며, 여러 가지 행동들도 변화를 꿈꾸고자 도움을 구하고자 합니다.
 
1971년에 철공소로 시작하신 저의 아버지는 축산기자재만을 40년 이상을 만들어오신 기술 엔지니어 이셨기에 어려서부터 기름, 망치소리, 노동자의 땀을 구경하며 자라온 것이 아마 남들보다 어린 나이에 고민할 수 있는 진로가 시작되었을 것이라고 생각됩니다. 제가 6살 때 아버지는 소사료용 옥수수 수확기를 제작하셨었는데, 기억 속 그 기계는 집채 만했고, 위험하여 기름 때, 날카로운 칼날, 공작선반등을 다채롭게 사용하시면서, 다치시기도 하고, 그 시대 젊은 사람들이 그렇듯, 전쟁 후 벤처정신 1세대로 살아오셨습니다. 그는 저에게 늘 실천적이셨습니다.
당시를 회상해보면 지금은 그 옥수수가 소 사료인 줄도 모르고 따라 다니며 옥수수 따던 기억도 있으며, 주말이면 언제나 영업하러 다니시는 아버지를 따라 차에 따라 다니며 전국을 누비기도 했습니다. 어린 저에게  장인정신 밑바탕을 교육하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현재는 아버지와 함께 일하면서 쉽지 않은 소통과 대화의 불편함을 느끼기도 합니다. 그런데 이것은 비록 우리 부자만의 문제가 아니라는 걸 알았습니다. 지금 회사의 직원들과 소통에서도 발생하고 있습니다.
 
처음에 제가 군 휴가시, 제가 아버지에게 질문했던 것은 이곳에 오면 내가 무엇을 할 수 있습니까?” 그러나 답변은 안철이가 나랑 함께 오면 좋지!” 막연하였으며, 정확한 뜻을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그때의 답변이 왜 단순하였는지 이제야 알았습니다. 저도 지금 저희 직원들에게 그러고 있는 것 같다는 생각도 들고 있습니다. 함께 하면 좋지만, 정말 그 일이 남들과 다른 책임감이 따름을 통감하면서, 단순히 함께하며 좋지?”의 문제가 아니라는 걸 알았습니다.
대기업과 달리 중소기업은 전문경영인이 운영할 수 있는 여건이 형성이 어렵다는 것은 이미 사회에서도 알 수 있을 것입니다. 처음에 사장아들이라는 이미지를 떨치기는 어려웠습니다. 작업 현장에서 땀 흘리며 일하기도 하고, 더 많은 시간을 투자하며 생각하고 노력해 보았습니다. 그러나 시선은 곱지 않죠? 제 땀의 대가나 아이디어는 어찌 보면 사장아들이라는 방식으로 치부되기도 하지요. 아마 재벌이나 중견기업의 망나니 사장아들쯤으로 여겼을 수도 있겠죠.
또한, 경영이라는 말을 꺼낼 수 있었던 시점이 문제가 되기도 합니다. 그 동안 아버지가 운영하시던 회사에 직원들의 이직과 퇴사가 말해주고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기업을 운영하는 큰 그림과 숲을 쳐다볼 여유도 없었을 것이라 생각됩니다. 비전을 제시해주실 시간적 여유도, 또한 교육을 할 상황적 여건도 충분치 않았을 것입니다. 그렇게 운영해 오면서 경영상 어려운 점도 많이 있었습니다. IMF와 같은 국가적 해결점이 없는 문제 속에서도 지금의 회사를 운영해왔으며, 주말이 없이 주중에는 영업하고, 주말에는 설계하고 이런 생활을 늘 보고 자랐습니다. 어머닌 주말이면 먹고 대학생이 되어 버린 저에게 아버지가 출장 다닐 때마다 따라 가라고 하셨었는데, 그땐 그 고충도 모르고 투덜 거리던 게 너무 한심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사장이란 그런 것인걸 작은 회사라도 그것이 쉽지 않다는 걸 알려주시려 했던 거 같습니다.
 
제가 입사를 하기 전 저의 작은 누나는 연세대학원 수학과를 졸업하고 아버지를 돕겠다고 설계직으로 지금 회사 실티에 근무했습니다. 저에게 누나는 큰 도움을 주었습니다. 분명 다른 회사에서 다른 경험을 가지고 들어와서 회사를 발전시키라고 했던 것이 였습니다. 정작 본인은 학교에서 공부만하다 입사하였기에 다른 기업이 돌아가는 방식을 본적이 없고 늘 사장님(아버지)의 지시에 따라 행동을 하였습니다. 아마 무엇인가 부족하다고 느낀 것을 알려주시고 싶었던 거 같습니다. 그 이후 무엇이 되었건 큰 기업에서 환경을 보고오자.” 마음을 먹었습니다.
 
대표적인 회사를 통해서 배워야 할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남들이 말하는 쉽지 않은 면접 과정들도 쉽게 통과할 수 있었던 것은 아마, 어려서부터 배워온 기업가 정신을 아버지로부터 배웠기 때문일 겁니다.
처음에 삼성전자에 입사할 당시부터 전 지금의 실티로 돌아온다는 것을 배재한 적이 없습니다. 일산에서 기흥을 출퇴근하면서 출퇴근 버스 속에서 상상속으로 꿈꾸고 회사가 해야할 일 앞으로 내가 펼칠 제품, 사회에 변화를 주고 싶은 마음, 이러한 미래를 그릴 때면 버스가 오히려 밀릴 때가 정말 감사할 따름이였습니다. 5년쯤 대기업의 논리란 무엇인지 배워야 할 것이라고 생각하고 입사를 하였고, 2년여 동안의 근무 후 퇴사를 결정했습니다. 더욱이, 상황역시 제게 있어 어려움이 함께 오기도 했습니다. 어머니가 말기 암으로 돌아가시면서 더 빨리 결정을 하게 되었습니다. 삼성 입사와 동시에 어머니가 아프신걸 알게 되면서, 아버지 혼자 힘으로 회사를 운영하시기 힘들 것이라 생각되었으며, 빨리 배워야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런데 주로 제가 삼성에 다니면서 배웠던 것들은 형식적인 것들이 대부분이 였습니다. 거기서 일하는 전 주인이라기 보다는 주변인 중에 하나 일뿐이라는 생각에 배울 수 있는 것들이 한정적이라는 것과 미래를 꿈 꾸기에는 학력, 학벌, 줄타기, 큰 기업의 윤리와도 일맥상통해야 한다는 걸 알았습니다. 이런 조직은 나랑 어울리기 힘들다는 것과, 미래를 꿈꾸는 월급쟁이 마인드가 되더군요. 주변사람들은 늘 월급이 적다고 말하고 있었지만, 저에게 꽤나 충분한 월급 이였고, 중소기업 종사자에 비해 꽤 생활여유가 된다고 생각했지요. 왜냐하면 전 이미 아버지가 월급을 주기 위해 매일 고생하시는 모습을 봐왔었기 때문입니다.
 
현재 실티에서는 학력과 학벌을 무시하고 제가 일일이 면접을 보면서 젊은 친구들과 함께 하기 위해서 여러 방면과 다양한 방식의 면접을 실시하여 왔습니다. 일례로 회사에서 직원이 함께 먹을 김장을 하는 날 김장을 하며 면접을 보기도 하고, 취직을 확실하지도 않은 친구를 정식 소프트웨어 구입비를 지출하면서까지, 사전 강습을 시키고 강습교사에게 1주일간의 면접과정을 거치기도 하고, 회사 워크샵에 참석시켜 사람들과 어울림 테스트로 면접을 보기도 했습니다. 또한 축산기자재를 만들면서 인터넷에 카페를 만들고 축사환경에 관련된 정보를 제공하고자 노력하였더니 목장을 운영하는 아버지 밑에서 자란 22살의 군대를 막 제대한 친구가 면접 후에 입사를 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그들에게 꿈을 제공하기엔 현실이 정말 호락호락하지 않습니다. 그 중 대다수의 친구들이 함께 일하고 있지만, 변화에 대한 적응력이 부족해지고, 다시 평상의 월급쟁이화 되고 있습니다. 제가 그랬던 것처럼 말입니다.
 
그러나 이제 변화와 혁신에 있어서 새로운 계기가 마련되어야 한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대부분의 친구들은 30살 즈음이라는 나이에 접어들면 본인이 많은 사회경험을 했다 생각하며 이직을 꿈꾸지만 쌓아놓은 경험이 축적은 부족하여 이직도 쉽지 않다는 것을 깨달은 시점에, 우리 회사에 입사하는 경우가 대부분 이였고, 지금 실티가 또 그런 느낌의 회사가 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입니다. 제가 주고 싶었던 것은 성취감이라는 큰 열정의 힘을 주고 싶었습니다. 하지만 현실 여건은 우리회사에 조립하는 친구들은 기계를 볼트로 조립하고, 용접을 하고, 일상에 지쳐 가는 모습이 느껴지기 시작하면서, 무엇을 통해서든 그들에게 벤쳐 정신이, 그리고 주인정신이 될 수 있는지를 가르쳐 주고 싶었습니다.
 
 아시다시피 축산인들은 일반 농민들과 대비하여 약 3배의 지출을 합니다. 장비가 당연히 비싸기 때문입니다. 트랙터, 원형베일러, 사료배합기, 부속작업기 등등 어느 것 하나 쉽게 구입할 수 있는 장비가 아닙니다. 하지만 FTA를 추진하는 정부의 정책은 시대의 흐름일 것이고, 우리의 1차산업은 경쟁력을 일어가고 있습니다. 그래서 주요고객층이 축산인인 실티는 올해 2월부터 원어민 영어강사를 초빙하여 영문 매뉴얼화 작업, 영어 수업을 현재 진행 중이며, 어려운 이 현실을 해외시장에 대한 개척으로 현실 난국을 해결해보려고 노력을 하고 있습니다. 이와 더불어, 저 신안철이라는 사람은 새로운 길을 위한 젊음의 창업을 통해 기존의 1차산업의 지원자로써의 실티가 해오던 일을 확장하고자 합니다. 물론 이러한 일들은 투자와 마케팅에 대한 실무적으로 접근 중이며, 다방면으로 연구 중에 있습니다.
제가 필요한 것은 직원들에게 의식 개선을 하고 싶은 마음과, 열정을 끌어내기 위한 리더의 길이 무엇인지 메시지 전달을 하고 싶습니다. 아마 면접을 보는 특이한 방식은 아마 직원들도 아마 신선했고, 그를 통해 인사 시스템을 정형화하고 안내하는 작업 역시 직원들이 실티에 입사하는 계기였다면, 이제는 그들의 의식을 개선할 수 있는 작업이 시작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지금 저는 이 회사에서의 노하우를 통해서 새로운 길을 모색할 또 다른 방식의 경영을 꿈꾸고 있습니다. 나부터 하는 벤처정신이라고 생각하시면 될 텐데, 현재 실티라는 회사는 축산기자재 중 사료배합기라는 특정 제품에만 사골 집처럼 유명해졌으나, 1차산업을 Support하는 모든 것을 만들 회사로 성장을 위한 새로운 창업을 기획하고 있습니다. 물론 창업은 수단입니다. 실티가 굳혀진 색깔을 벗어나기 위한 혁신을 만들 방법이 창업 이였고, 또한 새로운 창의 활동일 것입니다. 함께 일하는 친구들과 이러한 Venture 정신을 기반으로 SILTIFamily 기업을 지속적으로 창출하는 인큐베이터를 만들고 함께 공유하고 싶습니다. 창업Idea나 기업을 만들어내는 절차 이런 선구적인 길에 나서서 지금 진출하고 있으며, 이것이 우리가 다 각자의 사장이 될 수 있는 길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아마 그렇게 되면 내일을 더 주인정신으로 열정적으로 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또한 지역주민 위주의 채용을 통해 기업이 지역사회에 주는 이점을 만들고 싶습니다. 또한 주인정신을 가진 기업, Venture 마인드를 기를 수 있는 큰 정신과 열정을 이끌어 내고 싶습니다.
 
제가 기억하는 교수님은 기억하실지 모르겠지만, 건국대학교 중강당 에서의 강의였습니다. 그날의 강의는 정말 저에게 있어서 새로운 임팩트였고, 뇌를 깨우는 시간이 였습니다. 물론 한번의 강의가 무엇을 변화시키겠냐 만은 저에게 있어서 교수님의 강의는 이 사회 변화를 이끌어 주신다면 열심히 응원하고 싶습니다. 그리고 기회를 주신다면 이 편지를 읽어보시고 저희 회사에서도 명강의를 전달해주셨으면 합니다.
 
제가 이런 시간을 마련하려는 실무적인 이유는 불경기가 지속화되면서 회사의 영업일감이 줄고, 국가 정책과 우리의 제품이 시대상에 맞지 않아지는 것을 보면서 우리 식구들과 함께 새로운 돌파구를 찾아낼 사회적 변화를 같이 이끌고 싶습니다. 그것이 학벌이나, 뛰어난 인재의 두뇌에서만 나오는 그런 것이 아니라, 우리 안에 있는 회사의 미래를 함께 고민하는 가족을 통해서 만들수 있다는 마음에서 입니다. 일상에서 발견하고 일상을 개선하는 소소한 1차산업의 Supporter로 두뇌를 깨우고, 행동까지 이끌어 보고 싶습니다.
 명 강의를 듣기엔 저희 여건은 좋지 만은 않습니다. 실티는 공장이 교실이며, 우리의 일터입니다. 또한 청자 역시도, 작업복에 기름칠하며 일하는 분들입니다. 사회적으로 기술자가 다소 천시되고 경시되는 환경 속에서 우리의 피복이 그다지 환영 받는 사회는 아니기 때문이죠. 충분히 강사료를 지불할 능력도 없습니다. 마치 대기업이나 방송에 나오시는 대접을 해드릴 자신은 없기 때문입니다. 물론 미래의 변화된 실티가 그것을 보답 드릴 것입니다.
 
기회를 주실 수 있으면 정말 감사하겠습니다.
지난 실티의 역사, 카다로그와 아버지께서 저서하신 책을 함께 보내드립니다. 이미 아버지께서는 번역본은 없지만 각국의 지도자에게 본인의 의견을 전달하고자 배송도 완료 하셨습니다. 개인의 의견이기는 하지만 머지 않은 미래에 우리의 눈에 있을 수 있는 미래도 될 수 있겠죠. 일부 국가원수들은 답변도 주고 있습니다. 아직 한국의 대통령께서는 답변이 없습니다. 아마 이것도 우리의 현실일거 같습니다. 절차와 형식에 얽매어있는 행정절차가 그런 결과를 가져온 것이라 생각이 됩니다. 사회변화를 일으킬 수 있는 큰 메시지를 저희 직원들에게 공유해주시기를 바라며 이글을 보냅니다. 자필로 써서 더 신실한 모습을 보여드리고 싶지만, 제 글씨를 이해하시기 힘들 것이라 생각되어 이렇게 컴퓨터 타이핑으로 보내드리게 되었습니다.
이런 무례한 부탁임에 자리가 어려우실 수 있기에 제가 꼭 답변을 기다리지는 않겠습니다. 더 큰 업무와 큰 가르침이 늘 주변에서 일어나고 있으실 것이기 때문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가능하시면, 좋은 말씀을 전달할 자리 마련의 계기를 만들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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