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홍신의 이력사항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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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07-12-28 12:02
(해누리)삶을 생각케 해준 딸아이
 글쓴이 : 최고관리자 (125.♡.169.86)
조회 : 7,048  
토굴에 선방 차려놓고 정진만 하는 스님이 어쩌다 서울 나들이를 하면 우리집에서 잠자리를 펴곤 한다.
스님이 오면 식탁이 변할 수밖에 없다.
생선 한 마리 올리기가 괜히 죄스러워 식탁을 채마밭 꾸미듯 할 수밖에 없다.

요즘이사 아이들 핑계대며 고기점이라도 올려놓지만 스님은 당신 탓에 아이들 먹성을
막을까 하여 식단을 가리지 말라고 하지만, 한번도 젓가락 가는 걸 본 적이 없다.

그날도 스님과 우리 식구는 밥상머리에 앉았다.
스님은 오른 손 네 손가락을 촛불에 태워서 엄지 손가락 밖에 없음에도 수저질은 물론이요,
글씨체가 곧고 필력 또한 좋았다.

어려서 산사에 입적한 스님은 연비의식을 치르며 오른 손 네 손가락을 영원히 수행정진의
징표로 불살라 없앤 것이다.
남들이사 어찌 생각할지 모르지만 나는 그 행실 자체보다는 그런 결심의 정신을 높게 생각해온 것이다.

담뱃불만 살짝 떨어뜨려도 덴 자국 때문에 괴로워하는 범속한 내 인내로는 도저히 상상할 수
없는 경지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하물며 손가락 네 개를 기름 묻혀 촛불에 대고 하나하나 당신 몸을 사르는 몸짓을 연상하는
일은 끔찍하다기보다는 가슴이 미어지게 내 허망한 속세의 삶을 되돌아보게 하는 통증을 느끼곤 했다.

어느 날 식탁에서.
딸아이가 여섯 살 나던 해, 스님 옆에 앉아 마악 수저를 들면서 스님의 오른 손을 쳐다보았다.

“신님신님, 손가락 어디다가 두고 왔어?”
나는 가슴이 철렁거렸다.
아직 스님이라 제대로 부르지 못해 스님을 신님이라 부르는 어린아이가 뜬금없이 묻는다는 게
손가락을 어디다가 두고 왔느냐는 거였다.
이 아이가 손가락 없는 스님에게 왜 스님은 손가락이 없느냐고 물었던들 내가 당황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스님이 빙그레 웃었다.
초등학교에 다니는 오라비 녀석도 그 순간에 당황하는 눈치였다.
그 사연이 무슨 비밀일까마는 자칫 그분의 마음을 상하게할까 마음을 졸였다.

“손가락이 무거워서 두고 왔단다.”
아이고, 스님 대꾸가 저렇다니까.

“나는 하나도 안 무거운데….”
딸아이는 제 오른 손을 들더니 툴툴 털어가며 지껄였다.
하기사 손가락이 무거울 까닭이 없는 일 아닌가.
로봇이라면 임시변통으로 손가락이 아니라 목이라도 빼내어 두고 다닐 수 있지만 사람이
손가락을 두고 다닐 수 없고 보면 묻는 딸아이의 말투나 대꾸하는 스님의 말투가 어딘지 걸맞지 않았다.
우리 식구들은 일순 침묵했다.

누구 하나 나서서 거들 생각도 못했다.
딸아이만 납득할 수 없다는 듯, 다른 사람은 다 머리 길고 손가락이 다섯 개씩 있는데 신님이란 사람만
어찌하여 여느 사람과 다른지를 캐내려는 눈동자였다.

“이 손은 우리 예슬이가 밥 잘 먹고 말 잘 들으면 이렇게 쓰다듬어 주려고 가져왔고….”
그러면서 당신의 왼손가락을 펴보였다.
딸아이의 머리를 다섯 손가락으로 쓸어만져주었다.
계집아이는 그래도 눈을 동그랗게 뜨고 다음 대답을 기다리는 눈치였다.

이참에 스님이 엄지 손가락만 있는 기이한 손바닥을 쫙 펼쳐 보였다.
딸아이는 신기한 듯 스님의 손가락을 쳐다보았다. 스님은 느닷없이 그 손바닥으로 당신의 뺨을 소리나게
서너 대 때렸다.
손바닥 소리가 쩍쩍 붙었다. 왜 저러는 걸까….

“이 손은 우리 예슬이가 말 안 듣고 밥 투정하면 요렇게 때려주려고 손가락을 떼어두고 왔지.”
세상에…. 스님의 일상 거짓말에 딸아이는 고개를 끄덕이며 밥을 퍼먹기 시작하였다.

나는 안도의 숨을 쉬었지만 밥맛이 사라졌다.
저렇게 때묻지 않은 순결한 대화를 나는 할 수 없었다. 스님과 딸아이는 선문답을 한 것이지 사람의 대화는 아닌 것 같았다. 나는 내내 부끄러움에 휩싸였다.

손가락이 없는 스님을 만나면 연비를 했거나 사고를 당했거나 간에 결코 딸아이처럼 묻지는 않았을 것이다.
상대의 체면도 따지고 내 체면도 계산하면서 어물쩍 넘어가거나 묻더라도 얼마나 배운 사람 흉내를 내려고
했을까.

스님은 스님이니까 부끄러워해도 죄될 것까지야 없겠지만 딸아이에게만은 애비의 삶에 붙어 있는 때가 왠지
부끄러워 견디기 힘들었다.
‘이 녀석아, 넌 애비의 스승이구나.’

나는 이런 생각을 하였다. 딸아이의 순수함이 당연한 것인지도 모른다.
그리고 이만큼 살아온 나이이니 세상의 때가 어느 정도 묻어 있는 것도 당연하게 생각해온 것인지 모른다.

나는 얼마나 허명에 노출되며 살았는가? 세속적으로 이름이 나고 얼굴이 알려졌고, 작은 지식을 팔아 제자를 가르쳐왔고. 내가 쓴 소설 앞에 부끄러움도 느끼지 않으면서 세상이 알아주고 칭송하는 몇 마디에 낯을 세우지는 않았는가?

아니 내 양심을 그르치는 것을 탓하지 않고 변명거리는 그럴 듯하게 만들면서 남의 행실에 의분한 듯 비난의 칼을 갈지는 않았을까?

그 날 이후 나는 자꾸 부끄러움에 시달리곤 했다.
어쩌면 별 얘기가 아닌 일상에서 있을 수 있는 하나의 작은 이야깃거리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내 가슴 속에서는 때묻은 가슴을 씻어내야 한다는 교훈처럼 못이 박히기 시작하였다.'

나는 늘 자부하며 살아왔다. 적어도 비겁한 짓은 하지 않았다고 믿어왔다.
그러나 그것은 나 혼자만의 위로일 수 있는 것, 스님과 딸아이의 우연찮은 대화 한 토막을 들으며 느꼈던 내 감정의 밑바닥에는 좀더 내 삶을 깨끗이 해야 한다는 양심의 소리가 숨어 있었던 게 아닌가 하는 생각에 젖게 한다.

머리 깎고 산에 가지 않더라도 속세에서 때가 덜 타는 내 삶을 생각케 해준 내 딸아이 김예슬 앞에 ,
죽는 날에도 떳떳한 애비였노라 말할 수 있게 되기를 비는 마음으로

진주 14-04-26 14: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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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자기를 스스로 되돌아 보고
단도리를 하는 그 마음이 그대로 진실하여
마음에 울림을 줍니다.
가랑비에 저절로 젖듯이. . .
작가님의 글속에 그대로 배여 고스란이
읽는 이에게 전해집니다.
계심에 감사드림니다.